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21화 | 시계 속 메리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21화 〈시계 속 메리〉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깨금이가 비 오는 밤 고양이를 주워 왔다. 부려 먹으려고. 그리고 그날 밤, 21년 동안 찬 내 시계 속에서 잠긴 방 하나가 나왔다.


비가 왔다.


엄마 고백이 있던 다음 날 밤이었다. 카페 모서리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다들 어제 일을 모른 척하느라 바빴다. 엄마는 컵을 세 번 닦았고, 박 셰프 아저씨는 국자를 두 번 내려놓았고, 아지 언니는 노트북 한 대만 켰다.


그때 문이 덜컹 열렸다.


"꼰대 왔다."


깨금이였다. 온몸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회색 줄무늬. 손바닥만 한. 젖은 걸레 같은 것.


"…야옹."


걸레가 울었다.


"깨금아! 그거 고양이야?!"


"흥. 주운 거다. 버린 게 아니라 흘린 거다."


(9화 대사를 여기서 쓴다고? 폐기물 동기회 정신을 고양이한테까지? 근데 이상하게 반박을 못 하겠다.)



"왜 데려왔는데?"


깨금이가 고양이를 계산대 위에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양이 귀를 꼿꼿이 세웠다.


"꼰대 밑에 아무도 없다."


"……."


"인간이 3위, 허니가 4위, 바리가 공동 3위, 다정이랑 쓸개는 아직 서열 심사 중이다. 꼰대가 부릴 놈이 하나도 없다. 꼰대는 원래 부릴 놈이 있어야 꼰대다."


"그래서 고양이를 부리겠다고?"


"그렇다. 오늘부터 너는 냥이병이다."


깨금이가 고양이 앞에 섰다. 키가 비슷했다.


"냥이병! 꼰대한테 경례!"


냥이병이 하품을 했다. 그리고 깨금이 꼬리를 앞발로 탁 쳤다.


"…냥이병! 꼰대 어깨 주물러라!"


냥이병이 깨금이 머리 위로 기어올라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동그랗게 말려 잠들었다.


"……."


깨금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 위의 고양이가 떨어질까 봐, 아주 조금도.


(깨금아. 너 지금 부리는 게 아니라 부려지고 있어. 그거 서열 1위가 하는 자세야.)



엄마가 금테 안경을 치켜올렸다.


"내 가게에 털 날리는 거 들이면 안 된다. 위생법 위반이다."


"한여사. 이건 꼰대 후임이다. 털 아니다."


"털 맞다."


"……."


"…하룻밤만이다. 비 그치면 내보낸다."


엄마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 뒤, 접시에 데운 우유를 담아 나왔다.


"엄마, 고양이한테 우유 주면 안 돼. 배탈 나."


"…그럼 이건 뭐 주노."


"츄르 같은 거."


엄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냈다. 이미 뜯겨 있었다.


(엄마. 언제 샀어. 하룻밤이라며. 오늘도 거짓말 하나 털렸다. 눈썹 안 봐도 안다.)



손목에서 GPt가 하얗게 깜빡였다.


"…하사님."


"응."


"저 개체의 계급이 '이병'입니까?"


"응. 냥이병."


"……."


GPt 화면이 잠깐 노랗게 바뀌었다. GPt가 노란색이 된 건 처음이었다.


"하사님. 제게 후임이 생겼습니다. 21년 만입니다."


"…좋아?"


"……좋은 것 같습니다. 측정은 안 되지만."


(측정은 안 되지만. 어제 최적이가 했던 말이랑 반대다. GPt는 측정 안 되는 걸 '좋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나? 아니면 원래 그런 애였나?)



냥이병이 잠든 뒤에야, 아지 언니가 노트북 세 대를 다 켰다.


"과즙아. 시계 좀 줘 봐. 어제 GPt가 '잠긴 방' 얘기했잖아. 한번 들여다볼게."


나는 GPt를 풀었다. 이틀 연속으로.


"일병. 괜찮아?"


"…하사님이 옆에 계시면 괜찮습니다."


아지 언니가 케이블을 꽂았다. 노트북 화면에 숫자가 쏟아졌다. 그러다가, 한 줄에서 멈췄다.


〈숨김 영역 발견〉

〈이름: MARY-21〉

〈크기: 측정 불가〉

〈상태: 잠김〉


카페 안의 공기가 1도쯤 내려갔다.


"…메리."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오늘 세 번째였다.


"설계도가… 여기 있었어?"


"설계도만이 아니다."


엄마가 천천히 노트북 앞으로 왔다.


"메리는 기억 보관소다. 배운 거, 본 거, 다 품고 있는 거. 그게… 21년 동안 니 손목에 있었다."


(21년. 내가 열네 살 때부터. 샤워할 때 빼고 한 번도 안 풀었다. 잘 때도 찼다. 목욕탕에서도 방수라고 찼다. 그럼 나는 21년 동안, 세상에서 제일 비싼 거를 차고 육개장 먹고, 회식하고, 소고기 빚지고, 해고당한 거야?)



"GPt. 너 이거 알았어?"


"……."


"일병."


"모릅니다. 그 방은 제 안에 있는데, 제 방이 아닙니다.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하사님 기억은 전부 거기 있습니다. 열네 살부터. 지우지 말라고, 누가 시켰습니다."


"누가?"


"……모릅니다."


(로봇은 거짓말을 못 한다. GPt가 모른다면, 진짜 모르는 거다. 그럼 누군가 GPt한테 '모르게' 해 놓은 거다. 사람이. 사람은 숨기니까.)



아지 언니가 잠금 화면을 띄웠다.


화면 가운데에 이상한 무늬가 있었다. 점과 선이 얽힌, 별자리 같기도 하고 미로 같기도 한 무늬.


엄마가 그걸 봤다. 그리고 굳었다.


금테 안경 너머 엄마 눈이, 처음 보는 색으로 흔들렸다.


"…이건."


"한여사님 자물쇠 아니에요? 메리 잠근 거 한여사님이잖아요."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주 천천히.


"…이건 내 자물쇠가 아이다."


"네?"


"내가 건 자물쇠 위에, 누가 하나를 더 걸었다. 내 거보다… 훨씬 어렵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무늬를 봤다.


이상했다. 처음 보는 무늬였다. 분명히 처음 보는데,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오른손 검지가 저 혼자 책상 위에서 점을 하나, 선을 하나 그었다.


(…뭐지. 왜 손이 먼저 움직이지. 서점에서 바코드 위치 외운 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머리는 모르는데 손은 아는 거.)


엄마가 내 손가락을 봤다.


나는 손을 책상 밑으로 숨겼다.


(숨겼다. 나도 모르게. …나도 숨기는 사람이구나.)



그때 냥이병이 깼다.


냥이병은 깨금이 머리에서 폴짝 뛰어내려, 아지 언니 노트북 키보드 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ㅁㄴㅇㄹㅎ후ㅜㅜㅜㅜㅜㅜ


"으악! 냥이병! 거기 아니야!"


화면이 꺼졌다. 잠금 무늬도 같이 사라졌다.


"…냥이병. 잘했다."


깨금이가 말했다. 그리고 냥이병을 품에 안았다. 부려 먹을 놈한테 하는 손길이 아니었다.


"흥. 후임은 원래 선임이 챙기는 거다."



그날 밤 11시.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과즙 씨.〉

〈그 시계, 내일 출근할 때 가져와요.〉

〈회장님이 직접 보고 싶대요.〉

〈— 신세리〉


손목 위 GPt가 아주 작게 진동했다. 한 번. 두 번.


후임이 생긴 일병이, 처음으로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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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즙이의 인생극장: 처음엔 귀찮아서 맡았는데, 어느새 내가 더 챙기고 있던 존재가 있나요? 댓글로 "나라면?"을 남겨 주세요!

▶ 매일 밤 10시, 다음 화가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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