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20화 | 아빠라 불리는 사람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20화 〈아빠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사람들은 다 숨겼다. 엄마도, 세리 박사도. 그런데 우리 집 로봇들은, 하나도 숨기지 못했다.
〈등록명: 아빠〉
나는 그 글자를 세 번 읽었다. 네 번째 읽으려는데, 세리 박사가 전화를 끊었다.
세리 박사의 눈이 내 손목으로 내려왔다. GPt 화면은 아직 하얗게 켜져 있었다.
"…그 시계. 아직도 차고 있었네요."
"……."
"오늘은 내려가요, 과즙 씨. 첫 출근이잖아요. 첫날부터 야근시키는 회사는 나쁜 회사예요."
(지금 이 상황에서 근로기준법 드립? 이 사람 진짜 뭐야. 악당이면 악당답게 가둬야지. 왜 퇴근을 시켜 줘. 더 무섭잖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세리 박사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퇴근길 버스에서 나는 GPt한테 물었다. 아주 작게.
"GPt. 98.7%면… 거의 확실한 거지?"
"……."
"일병. 대답해."
"…하사님.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합니다."
버스 창밖으로 동네 가게들이 지나갔다. 정육점 앞에 은색 S-1이 서 있었다. 세탁소 앞에도. 분식집 앞에도.
(아빠가 저걸 만든 회사에 있다. 아빠가. 장례식 때 내가 육개장을 세 그릇이나 먹은 그 아빠가. 슬퍼서 먹은 거다. 원래 슬프면 배고프다. 그 육개장 값 돌려받아야겠다.)
카페 모서리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달려왔다. 금테 안경이 콧등에서 덜렁거렸다.
"과즙아! 괜찮나? 어디 다친 데 없나? 핀 좀 보자. 41도에서 안 올라갔제? 그 여자가 뭐라 카더노?"
"엄마."
"밥은 묵었나? 회사 밥 맛없제? 내가 김치찌개…"
"엄마. 아빠 살아 있어?"
카페가 조용해졌다.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아지 언니가 노트북 세 대를 한꺼번에 덮었다. 화분과 벽 사이에서, 은수 씨가 숨 쉬는 소리마저 멈췄다.
엄마가 웃었다.
"무슨 똥 싸는 소리를 하노. 니 아빠 장례식 니도 봤다 아이가."
엄마 왼쪽 눈썹이 올라갔다.
(왼쪽 눈썹. 8화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는 거짓말할 때 왼쪽 눈썹이 올라간다. 35년 동안 이 눈썹한테 속은 적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근데 오늘은 안 속는다.)
"GPt."
내가 손목을 들었다.
"아까 들은 거, 다시 말해."
"…외부 음성. 저장된 '아빠' 목소리와 일치율 98.7%. 위치: 퓨처리스 본사 최상층 통화."
엄마의 왼쪽 눈썹이 그대로 굳었다.
쿵.
쓸개 선배가 엄마 발목에 부딪혔다. 쿵. 쿵쿵. 쿵.
다정이가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쓸개 선배가요… 17년 전 회장실 녹음, 기억하냐고 해요. 그 녹음 속 남자 목소리랑, 지금 GPt가 들은 목소리가… 같은 사람이래요."
"…쓸개야."
엄마가 낮게 불렀다. 쓸개 선배는 멈추지 않았다. 쿵. 쿵쿵.
"'저는 들은 걸 지울 줄 모릅니다'래요."
(쓸개 선배. 17년 동안 들은 걸 하나도 안 지운 청소 로봇.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데, 이 선배는 다 들었다. 다 기억한다. 그래서 버려진 거다.)
"저도…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다정이가 손을 꼭 모았다.
"저 처음 왔을 때, 한 박사님 얼굴을 알아봤잖아요. 퓨처리스 기본 메모리에 저장돼 있어서요. 근데… 그 옆에 얼굴이 하나 더 있었어요."
"……."
"말씀 안 드린 건, 그분 이름 옆에 '비공개'라고 적혀 있어서예요. 비공개는 말하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어요. 근데…"
다정이 눈이 노랗게 깜빡였다.
"근데 과즙 님이 지금 너무 힘드신 얼굴이라서요. 공감 모듈이 '비공개'보다 세게 울려요."
다정이 가슴 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떴다.
웃고 있는 남자. 눈꼬리가 아래로 처진 눈.
내 눈이었다.
〈퓨처리스 고문 — 비공개〉
"…인간."
깨금이가 엄마 어깨에서 폴짝 내려왔다. 고양이 귀가 뒤로 바짝 젖혀져 있었다.
"꼰대도 하나 보여 줄 게 있다. 메모리가 많이 날아갔는데, 이건 남아 있다."
깨금이 눈에서 빛이 나왔다. 카페 벽에 흐릿한 영상이 떴다.
장례식장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국화. 그리고 영정 사진 앞에서 육개장을 먹고 있는 열여섯 살쯤의 나.
(…저거 나다. 진짜 세 그릇 먹고 있다. 저렇게 먹었구나. 부끄럽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화면 구석, 관을 드는 사람들 위에 작은 숫자가 떠 있었다. 깨금이가 그때 자동으로 잰 숫자.
〈측정 무게: 0.0kg〉
"관이 비어 있었다."
깨금이가 말했다.
"그때 꼰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한여사를 지켜라'만 남아서, 한여사가 우니까 같이 영상만 찍었다."
카페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엄마가 천천히 금테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엄마가 앉는 걸, 나는 거의 처음 봤다.
"…로봇들이 다 불어 삔다."
엄마가 웃었다. 울면서.
"사람은 다 숨기는데, 이것들은 하나도 못 숨긴다. 내가 그래 만들었는데. 내가 그래 고쳐 놨는데. 칭찬받아 마땅하제? …아이다. 이번엔 아이다."
"엄마."
"니 아빠는…"
엄마가 앞치마 끈을 꽉 쥐었다.
"니 아빠는 우리를 떠났다. 세리 손 잡고. 니 열여섯 살 겨울에."
"……."
"장례식은 그 사람이 원한 거다. 죽은 걸로 해 달라 카더라. 그래야 깨끗하게 떠난다고. 나는…"
엄마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니한테, 아빠를 버리고 간 사람 말고, 죽은 사람으로 남겨 주고 싶었다. 버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이 덜 아플 줄 알았다."
(…그랬구나.
19년 동안 아빠 기일마다 엄마가 혼자 산에 간 게, 아빠한테 간 게 아니었구나. 아빠 대신, 엄마가 혼자 울러 간 거였구나.)
나는 엄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엄마."
"…와."
"그럼 내 조의금은? 그때 친척들이 준 거. 그거 아빠 거 아니고 내 거잖아. 돌려줘."
엄마가 나를 봤다. 그리고 진짜로, 크게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이 가시나가… 똥 싸는 소리 하지 마라. 그거 니 적금에 넣었다."
"그 적금으로 허니 샀다며!"
"…그것도 거짓말이다."
(엄마. 오늘 거짓말 몇 개 털리는 거야. 근데 이상하다. 하나씩 털릴 때마다, 엄마가 가벼워지는 게 보인다.)
허니가 다가와 엄마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바이저가 노란색이었다.
바리 선배 화면이 켜졌다.
▶ 아메리카노
▶ 아메리카노
▶ 따뜻한 거
"…메뉴에 없는 거, 또 썼네."
다정이가 훌쩍였다. 쓸개 선배가 쿵, 한 번만 부딪혔다.
은수 씨가 화분 뒤에서 휴지를 내밀었다. 아무도 은수 씨가 거기 있는 줄 몰랐다.
그날 밤, 내 방.
나는 GPt를 풀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21년 동안, 샤워할 때 빼고 한 번도 풀어 본 적 없는 시계였다.
"GPt. 너는 알고 있었어?"
"……."
"일병."
"…모릅니다, 하사님. 그런데."
GPt 화면이 아주 천천히 깜빡였다. 하얗게, 하얗게, 그리고 한 번, 파랗게.
"제 안에 잠긴 방이 하나 있습니다. 21년 동안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방입니다."
"……."
"방금, 누가 그 문을 두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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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즙이의 인생극장: 누군가 나를 위해 한 거짓말을, 나중에 알게 된 적 있나요? 그때 화가 났나요, 고마웠나요? 댓글로 "나라면?"을 남겨 주세요!
▶ 매일 밤 10시, 다음 화가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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