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9화 | 최적이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9화 〈최적이〉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꼭대기 층의 하얀 방. 벽이 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는 최적이입니다."
"……아빠 눈이랑 똑같네."
그 말이 하얀 방 안에서 한참 동안 떠다녔다.
(아빠 눈. 나 아빠 눈 닮았다는 말, 장례식 이후로 처음 들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것도 꼭대기 층에서. 그것도 숫자 없는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온 데서.)
나는 표정을 지웠다. 눈썹 1밀리미터 아래로.
"처음. 뵙겠습니다. 사무 보조. 한과즙입니다."
여자가 웃었다. 입꼬리만.
"AI 흉내, 잘하네요. 근데 하나는 틀렸어요. 우리 AI들은 긴장하면 손가락을 안 접거든요."
나는 책상 밑에서 접고 있던 손가락을 슬그머니 폈다.
(들켰다. 다섯 교시 특훈에 '손가락' 교시는 없었다. 바리 선배, 다정아, 우리 커리큘럼에 구멍 있다.)
여자의 시선이 내 귀 위쪽에 멈췄다. 까만 머리핀.
"…한서린 솜씨네요. 이렇게 작게도 만들 줄 알았구나. 옛날엔 뭐든 커다랗게 만들던 사람이."
(엄마 이름. 이 사람이 엄마 이름을 안다. 그것도 '한여사'가 아니라 '한서린'으로. 엄마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박 셰프 아저씨랑 아지 언니뿐인데.)
"…누구세요."
"신세리예요. 이 회사 기술 책임자. 그리고…"
여자가 잠깐 말을 골랐다.
"과즙 씨 엄마랑, 아주 오래전에 같은 방을 썼던 사람."
(…신세리. 깨금이가 "우리 엄마다" 하던 그 이름. 근데 같은 방? 기숙사? 일본? 아니 잠깐, 엄마가 일본 유학을 했다고? 그건 들은 적도 없는데?)
세리 박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하얀 벽 한쪽이 파랗게 물들었다. 그리고 벽이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등골이 쭈뼛 섰다.
내 목소리였다.
"저는 최적이입니다. 찾으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비 오는 날에는 비닐봉투 한 장 더 드릴까요?"
(…이거 나다. 서점 계산대의 나다. 15년 동안 '어서 오세요'를 2만 번쯤 한 그 목소리다. 근데 이상하다. 내 목소리인데 내 목소리가 아니다. 숨 쉬는 자리가 없다. 사람은 문장 사이에 숨을 쉬는데, 얘는 안 쉰다.)
"최적이는 우리 회사 두뇌예요. 휴먼 S-1 마흔 대한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죠. 아래층에서 봤죠? 그 아이들이 과즙 씨 말투로 연습하는 거."
"……."
"교재가 아주 좋았어요. 15년치. 한 번도 화 안 내고, 한 번도 지각 안 하고, 한 번도 틀린 위치를 안내한 적 없는 목소리. 그래서 '최적'이에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아니, 알겠다. 이건 나를 다 빨아먹고 남은 껍데기한테 하는 말이다. 저작권료 청구서에 0 하나 더 붙인다.)
벽에 숫자가 떴다.
〈휴먼 S-1 보급 목표: 1,000,000대〉
〈2027년까지 서비스직 인력 대체율: 72%〉
"과즙 씨를 자른 서점 AI, 기억하죠? 그건 시작이었어요. 편의점, 은행, 병원 접수, 학원 상담실, 동네 카페. 사람이 사람한테 말을 거는 자리마다 S-1이 들어갈 거예요. 더 친절하고, 더 정확하고, 안 지치니까."
"…동네 카페도요?"
"카페 모서리도요."
세리 박사가 그 이름을 말할 때,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렸다. 1밀리미터만큼.
(카페 모서리를 안다. 바리 선배 '회수'가 이 사람 결재였다. 근데 왜 떨지? 아니, 내가 잘못 들었나. 서점 15년 귀가 말한다. 잘못 들은 거 아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나는 벽을 봤다. 내 목소리가 사는 벽.
"최적이. 비 오는 날 비닐봉투 한 장 더 주는 이유가 뭐야?"
벽이 0.2초 만에 대답했다.
"고객 만족도가 평균 0.3% 상승합니다. 재방문율이 1.1% 오릅니다. 비닐봉투 원가 대비 효율이 높습니다."
"땡."
"……."
"틀렸어. 그냥 젖으면 속상하니까. 책 모서리가 젖으면, 그 사람이 집에 가서 그 책 펼 때마다 속상하니까. 그래서 준 거야. 0.3% 때문이 아니라."
벽이 잠깐 깜빡였다.
"…'속상하니까'는 측정 가능한 지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너는 내 목소리만 배웠지, 나는 못 배웠다고."
(말했다. 말해 버렸다. AI 모드 해제. 감정 절전 모드 강제 종료. 엄마, 미안. 근데 이건 참을 수가 없었어. 내 15년을 0.3%로 계산하는 건 좀 아니잖아.)
세리 박사가 나를 봤다. 아까보다 오래.
"…똑같네. 정말."
"아빠 눈이요?"
"아니. 이번엔 말투. 그 사람도 꼭 그렇게 말했어요. 측정 안 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그 시각, 카페 모서리.
"한여사님! 핀 온도 41도!"
아지 언니가 노트북 세 대를 한꺼번에 돌렸다. 화면마다 빨간 그래프가 치솟고 있었다.
엄마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내려놓을 때처럼, 아주 천천히.
금테 안경 너머로 엄마 눈이 가늘어졌다.
"…세리다."
"네?"
"그 핀은 세리 근처에서만 그래 뜨거워진다. 내가 그래 만들었다."
박 셰프 아저씨가 앞치마를 벗었다. 엄마가 손을 들어 막았다.
"가지 마라. 우리 딸, 아직 안 잡혔다. 잡혔으면 핀이 50도 넘는다."
"…그것도 한여사님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당연하제. 칭찬받아 마땅하제?"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다. 엄마 손이 앞치마 끈을 꽉 쥐고 있었으니까.
깨금이가 계산대 위에서 고양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인간 냄새가 멀리서 난다. 32층보다 높은 데서."
세리 박사가 방 한쪽으로 걸어갔다. 바이저 없는 허니 몸체 앞이었다.
텅 빈 얼굴 자리를, 세리 박사가 손끝으로 쓸었다.
"이 아이들은 다 얼굴이 있어요. 은색 바이저. 근데 처음 만든 아이는… 얼굴을 끝내 못 넣었어요."
"…허니요?"
"허니. 이름 잘 붙였네요."
세리 박사가 웃었다. 이번엔 입꼬리 말고, 눈이 웃었다. 아주 잠깐.
"넣고 싶은 얼굴이 하나 있었거든요. 근데 그 얼굴은, 아무리 그려도 안 그려지더라고요."
(…뭐야. 이 사람 지금 슬픈 거야? 악당 아니었어? 악당은 슬프면 안 되는데. 반칙이다. 나 지금 악당한테 공감하면 안 되는데, 다정이가 옆에 있었으면 "많이 힘드셨죠?" 했을 것 같다. 다정아, 여기 오지 마. 너까지 무너지면 안 돼.)
그때 세리 박사의 가운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세리 박사가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는 순간,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네, 회장님."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세리 박사만 짧게 대답했다.
"네. 지금 여기 있어요. …아니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네. 눈은…"
세리 박사가 나를 한 번 봤다.
"…당신이랑 똑같아요."
(당신? 회장한테 '당신'? 이 회사 회장이 누군데. 그리고 왜 내 눈 얘기를 회장한테 하는데.)
그 순간, 손목에서 진동이 왔다.
꺼져 있던 GPt 화면이 혼자 켜졌다. 하얗게. 그리고 아주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외부 음성 감지〉
〈저장된 목소리와 일치율 98.7%〉
〈등록명: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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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즙이의 인생극장: 누가 "그건 비효율이야"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지키고 싶은 작은 습관이 있나요? 댓글로 "나라면?"을 남겨 주세요!
▶ 매일 밤 10시, 다음 화가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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