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9화 | 아메리카노만 됩니다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9화 〈아메리카노만 됩니다〉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엄마는 끝까지 "박사님"을 모른 척했다. 그 대신 다음 날 아침, 우리 카페에는 로봇이 다섯이 되었다. 라떼를 시킨 손님에게 바리 선배가 말했다. "메뉴에 없습니다."


"……한서린 박사님. 맞으시죠?"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무서우리만치 긍정의 답을 들려주는 고.요.함.

'아! 나만 모르는 건가?'

벽시계 초침 소리만 똑, 딱, 똑, 딱.

엄마 어깨 위의 깨금이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들켰다."

모두가 깨금이를 쳐다봤다.

깨금이는 뭔가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게 된 듯했다. 그러더니 엄마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들, 들개다! 왈왈! 오로롱~ 으릉! 나는 들개다! 미친 깨금 들개다!"

고양이 귀 달린 들개가 허니 정강이로 돌진했다. 허니는 꿈쩍도 안 했다.

'아재 개그하는 26년 차 로봇이라니! 귀신도 곡하겠다.'

깨금아! 너무 갔어. 나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제 포기하라는 듯 나는 엄마를 봤다.

엄마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천천히 주웠다. 액정이 금 가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더니, 활짝 웃었다.


"박사? 아이고, 맞다 맞다! 내 박사다!"

"…엄마?"

"라떼 박사! 우리 동네에서 라떼 제일 잘 만드는 박사! 니 몰랐나? 내 별명이 '라떼 박사'다. 정육점 김 사장이 지어 줬다 아이가!"


엄마는 평소보다 두 배는 오지게 진한 사투리를 쓰는 동네 아낙이 된 듯, 경박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이 개똥 같은 모두의 발연기에 나는 절대 동참하지 않으리라!

나는 이를 악물고, 내 속의 평화를 찾기 위해 힙합계를 휩쓰신 오라버님 타이거JK님의 〈Monster〉를 머릿속에서 시동 걸었다. 빰~ 빠바밤밤. 발라버려~

확! 마! 다들 발라버릴까?


엄마는 다정이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아이고, 하얀 게 눈치도 빠르네~ 우리 박사님 소리도 알아듣고! 이쁘다, 이뻐!"


다정이가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제 메모리에는 '라떼 박사'라는 항목이 없어요."

"그럼 지금 저장해라. 라, 떼, 박, 사."

"……저장했어요."


다정이 화면에 '라떼 박사 ☕' 글자가 떴다. 엄마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캬! 발라버려~ 둥~ 두두둥둥~ 한참 평정심에 막 입문하기 직전이던 나는, 다정이 로봇의 뜬금포에 비트가 뚝 끊겼다. 뭐? 이거 실화야?

엄마가 뭐라 했다고 저 로봇이 말을 듣는 거야? 엄마가 로봇신이라도 돼?


"뭐시라 궁시렁 궁시렁이고. 할 말 있으면 앞에서 딱딱 정확히 해라 했잖아! 자, 늦었다! 다 자라! 로봇들은 저 창고! 과즙이는 니 방! 허니, 신입들 충전기 꽂아 줘라!"

"…한여사님. 미확인 기체를 창고에 들이는 것은 보안상…"

"허니."

"네."

"꽂아라."

"…네."


허니가 신입 셋을 데리고 창고로 갔다. 바리 선배가 끌려가면서 화면을 띄웠다.


주문하시겠습니까?

▶ 잠

▶ 잠

▶ 복수 (내일 아침에)


나는 방으로 올라가다가 계단 중간에 멈춰 섰다.

엄마의 왼쪽 눈썹이, 아직도 올라가 있었다.


라떼 박사는 무슨.

엄마는 라떼를 만들 줄 모른다. 우리 카페 라떼는 5년 동안 박 셰프 아저씨가 만들었고, 허니가 온 뒤로는 허니 몫이다. 하기사 라떼 박사가 반은 맞다. 어려서 편식 심한 내 건강이 걱정이던 엄마는 우유, 달걀은 완전식품이라며 모든 음식에 우유, 달걀을 섞었다. 그러고는 '라떼식'이라며 색깔과 이름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나를 유인했고, 나는 그 우윳빛깔에 낚여서 먹어 보고 사색이 된 적이 정말 많았다.

잊혀진 기억까지 소환되는구나 ㅋㅋ.



다음 날 아침 7시.

알람보다 먼저 냄새가 나를 깨웠다. 버터 냄새, 계란말이 냄새, 그리고 아주 진한 커피 냄새.

계란말이? 어젯밤 엄마 휴대폰에 슬쩍 보였던 문자가 떠올랐다. [퓨처리스다. 내일 아침 다 모이자.] 내일 아침 메뉴는 개뿔.


"GPt, 지금 몇 시야?"

"오전 7시 2분입니다, 과즙 하사님. 참고로 어젯밤 하사님은 잠꼬대로 '박사님'을 열일곱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메모리에서 지워."

"지울 수 없습니다. 하사님의 모든 기억은 소중하게 보관하라는 설정이 있습니다."

"누가 그런 설정을 했는데?"

"……."


GPt가 대답하지 않았다. 민트색 화면만 조용히 깜빡였다.

요즘 이 시계, 대답 안 하는 일이 너무 많다.


나는 이불 속에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자기소개서 — 지원: 엄마 카페 알바. 저는 15년 동안]

…또 지웠다. 엄마는 "카페 나와서 내랑 놀자!" 했지만, 꼬붕 알바생은 이미 구해 놨다며? 그럼 나는 정식으로 면접 보고 들어간다. 공짜로 얹혀 가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함. 엄마한테는 아직 비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나는 주방 문틈에 귀를 댔다.

염탐 능력치 Lv.3. 15년 서점 휴게실에서 갈고닦은 기술이다.


"…퓨처리스가 HR-7을 버렸다는 건, 이제 해고 통보도 자동화했다는 뜻이야."

아지 언니 목소리였다. 노트북 자판 소리가 다다다닥 났다.

"폐기장에 버린 게 아니라, 흘린 거지."

박 셰프 아저씨였다. 칼질 소리가 탁, 탁, 탁.

"그 청소 로봇… 소문대로 회장실 바닥까지 닦던 놈이면, 녹음도 들어 있을 거고."

"그러니까 하필 그걸, 하필 과즙이가 주워 온 거지."


탁.

칼질이 멈췄다.


"서린 언니. 과즙이한테 언제 말할 거예요?"


나는 숨을 멈췄다. 문틈으로 엄마 뒷모습이 보였다. 앞치마 끈을 두 번이나 다시 묶고 있었다.


"…아직이다. 쟤가 아직 지 자기소개서 첫 줄도 못 쓰는데, 내 얘기까지 얹으면 안 된다."


뭐야.

내 자기소개서 얘기는 왜 나와. 그건 아직 엄마한테 말도 안 했는데.


그때 내 손목에서 GPt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과즙 하사님, 엿듣기 중 심박수가 분당 112회입니다. 진정하십시오."


…주방이 조용해졌다.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가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일어났나? 밥 묵자."

"응……."


"GPt, 너 오늘부터 일병 아니고 이병이야. 고자질한 죄!"

"그건 좀~ 한번 일병 됐는데 내려가는 개족보는 군인 사회에 없습니다, 하사님!"

"허! 그러셔요? GPt, 피티 200번 실시! 너 요새 좀 편했지? 영창 보내기 전에 그 입 다물어!"



아침 9시. 카페 모서리, 오픈.

그리고 그날, 엄마 카페에는 로봇이 다섯이 되었다.


카운터 위에 깨금이. 주방 앞에 허니.

그리고 신입 셋.

다정이는 입구에서 인사 담당. 쓸개 선배는 바닥 청소. 바리 선배는…


"선배님. 거기 아니에요. 그건 커피머신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바리 선배는 카페 에스프레소 머신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둘은 거의 같은 키였다. 둘 다 은색이었다. 둘 다 '스팀' 소리를 냈다.


〈이 구역은 제 구역입니다.〉

치이이익—

커피머신이 스팀을 뿜었다.

〈방금 저 기계가 저에게 반말했습니다.〉

"선배님, 쟤는 말을 못 해요."

〈17년 동안 저도 말 못 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요.〉


허니가 두 기계 사이에 섰다. 키가 커서 둘을 내려다봤다.

"바리 선배님. 이 카페의 커피는 한동안 제가 담당해 왔습니다만……."

〈그래서 맛이 그 모양이군요.〉


…허니의 바이저가 처음으로 빨간색으로 깜빡였다.


"허니, 참아. 쟤 몸통에 찌그러진 발자국 좀 봐. 평생 발로 차였어."

"…과즙 님. 저는 태어나서 5년 내내 '허니'라고 불렸습니다."

"……그건 좀 더 힘들었겠다. 하지만 나도 너 못지않게 어릴 때부터 즙즙이 놀림 당했어! 그것도 침 소리랑 같이, 드럽게! 들어 봐! 차라리 꿀물 같은 달콤 버전은 감사스럽다니까. 암튼 이게 다 지독하리만큼 없는 누군가의 작명 센스 덕에, 우리가 이렇게 무거운 삶을 사는 거야."

허니의 바이저가 빨간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첫 손님은 길 건너 수학학원 원장님이었다.

"아메리카노 하나요. 아, 오늘은 라떼로 할까?"


바리 선배의 화면이 번쩍 켜졌다.


주문하시겠습니까?

▶ 아메리카노

▶ 아메리카노

▶ 아메리카노


"…라떼는요?"

〈메뉴에 없습니다.〉

"저기 메뉴판에 라떼 있는데요?"

〈저 메뉴판은 제 메뉴판이 아닙니다.〉


원장님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웃으면서 바리 선배의 몸통을 살짝 돌렸다.

"원장님, 라떼는 허니가 해 드릴게요. 얘는… 신입이라서요."

〈17년 차 신입입니다.〉


원장님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피식 웃었다.

"그럼 아메리카노 할게요. 왠지 안 시키면 미안할 것 같네."


바리 선배가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화면에 작은 글씨가 떴다.


〈17년 만에 처음으로, 발로 차이지 않고 주문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글씨를 오래 봤다.

괜히 코끝이 시큰했다. 해고당한 다음부터 나는 별게 다 짠하다.



오후 2시. 사건은 입구에서 터졌다.


"요즘 많이 힘드셨죠?"


다정이가 손님마다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그 말을 했다. 처음엔 다들 웃고 지나갔다.

그런데 세 번째 손님, 정육점 김 사장님이 멈춰 섰다.


"…어. 힘들었지. 요즘 고깃값이 너무 올라서…"

"그러셨군요. 고객님, 혹시 앉아서 이야기하시겠어요? 차를 드릴게요."

"차 있어?"

"사실 차는 없어요. 하지만 아메리카노는 있어요."


바리 선배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다정이는 김 사장님을 모서리 자리로 모셨다. 공주방석에 공주식탁보, 엄마가 "모난 손님일수록 귀빈이다!" 하고 우겨서 만든, 우리 카페에서 제일 귀한 자리. 다정이가 맞은편에 앉았다.

10분이 지났다. 20분이 지났다.

김 사장님이 휴지를 달라고 했다.


"…우리 아들이 서울 가서 연락을 안 해. 내가 고깃집 하는 게 창피하대…"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그런데 고객님, 아드님은 아버님 고기를 먹고 컸잖아요."

"……그렇지."

"그럼 아드님 몸의 15%는 아버님 고기예요."

"………으허헝."


김 사장님이 울었다. 동네에서 제일 무섭게 생긴 김 사장님이, 공주방석 위에서.

쓸개 선배가 김 사장님 운동화에 쿵 부딪혔다. 쿵. 쿵쿵.

다정이가 통역했다. "'괜찮다'래요."


그날 저녁, 동네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한여사네 카페 모서리에 하얀 로봇 있음. 힘드냐고 물어봄. 김 사장님 울고 나옴. 대박.]


다음 날, 입구에 줄이 생겼다.

힘든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공시생, 퇴근길 간호사, 아이를 업은 엄마, 은퇴한 경비 아저씨.

다정이는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다정이 상담비만 받아도 내 ETF 적금 복구 각인데? ㅋㅋ'


엄마는 카운터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아주 오래.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공감 모듈 3.0이라. 퓨처리스 놈들, 그건 제대로 만들었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염탐 능력치 Lv.3은 오늘도 정상 작동 중이다.



밤 10시. 마감.

의자를 올리고, 불을 하나씩 껐다.

다정이는 충전기 앞에서 화면을 끈 채 앉아 있었다. 하루 동안 마흔세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다정아, 힘들었지?"

다정이가 화면을 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네. 처음으로요. 그런데 이상해요. 내부 온도가 좋은 쪽으로 2도 올라갔어요."


그때였다.

어두운 카페 바닥을 청소하던 쓸개 선배가, 카운터 다리에 부딪혔다.


쿵. 쿵쿵. 쿵.

쿵쿵. 쿵. 쿵쿵쿵.


처음 듣는 박자였다. 버스에서, 폐기장에서 듣던 것과 달랐다.

다정이의 화면이 확 밝아졌다. 고개가 15도에서, 똑바로 섰다.


"…과즙 님."

"응?"

"쓸개 선배가, 녹음 파일 하나를 읽고 있어요. 17년 전 회장실에서 녹음된 거래요."


쿵. 쿵쿵. 쿵.


"그 안에… 과즙 님 이름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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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즙이의 인생극장: 누군가 "많이 힘드셨죠?"라고 물어 준다면, 여러분은 무슨 이야기부터 꺼낼 것 같나요? 댓글로 "나라면?"을 남겨 주세요!

▶ 매일 밤 10시, 다음 화가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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