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1화 | 소고기 빚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1화 〈소고기 빚〉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해고당한 날 회식에서, 나는 소고기를 한 점도 못 먹었다. 그런데 오늘, 그 소고기 빚을 갚으러 온 사람이 있다. 배를 두 손으로 감싼 내 후배 윤지였다.
아침 8시 50분.
나는 카페 문을 열려다가, 멈춰 섰다.
"…이게 뭐야."
내 앞에 허니. 내 뒤에 바리 선배. 왼쪽에 다정이. 오른쪽에 쓸개 선배. 머리 위, 정확히는 내 어깨 위에 깨금이.
나는 로봇 다섯 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장 한여사 명령이다! '혼자 다니지 마라'! 따라서 오늘부터 과즙 양은 5인 경호 체제다!"
"깨금아. 나 지금 카페 문 열러 가는 거야. 열 걸음이야."
"열 걸음이면 열 번 납치될 수 있다! 꼰대는 방심 안 한다!"
허니가 고개를 숙였다.
"과즙 님. 동선을 미리 알려 주시면 제가 앞에서 문을 열겠습니다."
"…그냥 내가 열게."
"안 됩니다. 문 뒤에 누가 있을지 모릅니다."
허니가 문을 열었다.
문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침 햇빛이랑, 정육점 김 사장님이 내놓은 화분만 있었다.
〈위험 요소 없음.〉
바리 선배의 화면이 떴다.
〈주문하시겠습니까? ▶ 아메리카노 (경호 완료 기념)〉
손목에서 GPt가 말했다.
"과즙 하사님, 현재 심박수 정상입니다. 다만 짜증 지수가 측정 범위를 넘었습니다."
"그런 것도 재?"
"어젯밤에 새로 만들었습니다."
어젯밤에 그 화면에 뜬 '메리~21'에 대해서는, GPt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아직은.
오전 11시.
카페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어서 오세요. 요즘 많이 힘드셨죠?"
다정이가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이,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었다.
"…선배?"
윤지였다.
우리 팀 막내. 회식 날 미스터 최를 발로 차 버린 그 윤지. 화장실 앞에서 나를 안고 엉엉 울던 그 윤지.
"윤지야!"
나는 카운터를 뛰어넘을 뻔했다. 실제로는 카운터 모서리에 허벅지를 박았다. 쿵.
쓸개 선배가 따라서 쿵 부딪혔다. 위로인지 흉내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윤지에게 달려가기도 전에, 허니가 먼저 움직였다.
허니가 윤지 앞을 막아섰다. 바이저가 노랗게 깜빡였다.
"확인되지 않은 방문자입니다. 과즙 님 주변 인물입니다."
"흥! '딸 주변부터 흔들어'! 수상하다! 배에 뭐 숨겼냐! 도청기냐!"
깨금이가 내 어깨에서 파란 빛을 윤지 배에 쏘았다.
윤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기요."
"아기?"
"네. 석 달 됐어요."
깨금이의 파란 빛이 1초 만에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미안하다. 꼰대는 아기에게 약하다."
허니도 한 발 물러섰다. 바이저가 파란색으로 돌아왔다.
"실례했습니다. 고객님과 아기님, 앉으실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윤지가 나를 봤다.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선배…… 로봇 공장 차렸어요?"
"아니. 로봇들이 나를 차렸어."
모서리 자리. 공주방석. 엊그제 정육점 김 사장님이 울었던 그 자리.
윤지는 거기 앉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선배. 회사, 아니 서점… 진짜 엉망이에요."
"왜?"
"선배 자리에 AI 들어왔잖아요. 처음 이틀은 다들 신기해했어요. 근데 사흘째에, 그 AI가 어린이 코너에 공포 소설 300권을 발주했어요."
"…왜?"
"'어린이가 좋아하는 감정: 두근거림'으로 분석했대요."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가, 꾹 참았다.
15년 동안 내가 손으로 하던 일이었다. 아이들 손에 맞는 책 높이, 엄마들이 잘 집는 색깔, 비 오는 날엔 그림책을 앞쪽으로.
그런 건, 설문지에 안 나온다.
"반품 폭탄 맞았어요. 팀장님은 매일 사장님한테 깨지고, 미스터 최는 그 AI한테 '선배'라고 부르면서 아부해요."
"……미스터 최는 일관성이 있네."
"그리고 광두 매니저요."
"응."
"갑자기 그만뒀어요. 선배 나가고 사흘 만에. '좋은 데' 간대요. 엄청 좋은 데라고, 명함을 막 자랑하던데… 회사 이름이 영어였어요. 퓨… 퓨처… 뭐였더라."
다정이가 고개를 15도에서, 똑바로 세웠다.
허니의 바이저가 노랗게 한 번 깜빡였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퓨처리스?"
"아! 맞아요. 선배 어떻게 알아요?"
"그냥. 요즘 많이 들어."
윤지는 몰랐다. 그 단어 하나에 카페 안 로봇 다섯이 동시에 굳은 걸.
"근데 윤지야. 너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멀잖아."
"아, 그게요."
윤지가 가방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두툼했다.
"소고기 빚 갚으러 왔어요."
"……뭐?"
"그날 회식요. 선배 해고당한 날. 우리가 선배 핑계로 소고기 먹으러 갔잖아요. 근데 선배는 블랙아웃돼서 한 점도 못 먹었대요. 미스터 최가 다 먹었어요. 선배 몫까지."
"……미스터 최는 진짜 일관성이 있네."
"그래서요. 그날 선배 몫, 제가 계산해 왔어요. 1인분 4만 2천 원. 그리고 이자."
봉투 안에 5만 원짜리가 한 장, 그리고 만 원짜리가 몇 장.
그리고 쪽지 하나.
〈선배, 소고기 꼭 사 드세요. 철분 부족이면 또 쓰러져요. —막내〉
나는 그 쪽지를 오래 봤다.
요즘 나는 정말, 별게 다 짠하다.
"윤지야. 이거 안 받아."
"받으셔야 돼요! 제가 그날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단 말이에요!"
"안 받아. 대신."
나는 봉투를 윤지 손에 다시 쥐여 주고, 일어섰다.
"대신 오늘, 내가 살게. 소고기."
"김 사장님!"
나는 길 건너 정육점 문을 벌컥 열었다. 뒤에 로봇 다섯과 임산부 하나를 데리고.
김 사장님이 칼을 든 채 돌아봤다. 동네에서 제일 무섭게 생긴 얼굴이, 다정이를 보자마자 활짝 풀렸다.
"오! 하얀 거! 우리 상담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객님. 오늘은 아드님한테 연락 왔어요?"
"왔어! 어제 왔어! 그 '15%' 얘기를 해 줬더니 애가 전화로 울더라고!"
김 사장님은 다정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보고, 윤지 배를 봤다.
"뭐 줄까?"
"제일 좋은 걸로요. 철분 많은 걸로. 얘 임산부예요."
김 사장님이 말없이 냉장고 맨 안쪽에서 고기를 꺼냈다. 마블링이 눈처럼 박혀 있었다.
저울에 올렸다. 숫자를 보고, 나는 침을 삼켰다. 오늘 카페 매상이 다 날아갈 숫자였다.
"……사장님, 저 이거 반만—"
"반값."
"네?"
"상담료다. 하얀 거 상담료. 반값에 가져가."
다정이가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고객님. 저는 상담료를 받지 않아요."
"그럼 이건 내가 주는 거야. 됐지?"
"……네. 저장했어요."
그날 점심,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 대신 집게를 들었다.
치이이익—
카페 주방에서 고기 굽는 소리가 났다. 커피머신이 바리 선배한테 '반말'하던 그 스팀 소리보다 훨씬 좋은 소리였다.
〈이 구역은 제 구역입니다.〉
"바리 선배님, 오늘은 셰프 아저씨 구역이에요."
〈……양보하겠습니다. 오늘만.〉
박 셰프 아저씨가 첫 점을 윤지 접시에 올렸다.
"임산부 먼저. 그다음 과즙이."
두 번째 점이 내 접시에 떨어졌다.
나는 그걸 집어서, 입에 넣었다.
……아.
1년 하고도 몇 달 만의 소고기였다.
해고당한 날 블랙아웃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소고기가, 지금 내 입 안에 있었다.
"선배… 울어요?"
"아니. 고기가 너무 뜨거워서."
"선배, 독사가 울면 어떡해요."
"너도 울잖아."
"저는 호르몬 때문이에요!"
우리는 고기를 씹으며 같이 울었다. 화장실 앞에서 울던 그날처럼.
엄마가 카운터에서 그걸 보다가, 슬쩍 휴지 한 통을 테이블에 올려 주고 갔다.
아지 언니는 노트북을 덮었다. 오늘 처음으로.
깨금이가 내 어깨 위에서 작게 말했다.
"흥. 인간들은 고기 먹고 운다. 이해 불가. 근데 이상하다. 나도 렌즈에 김이 서린다."
"그건 고기 연기야, 깨금아."
"……그런 걸로 하자."
오후 4시.
윤지가 돌아갈 시간이었다. 허니가 택시를 불렀고, 다정이가 문 앞까지 배웅했다.
"선배. 다음엔 아기 데리고 올게요."
"응. 그땐 내가 소고기 또 살게."
"그럼 빚이 또 생기잖아요."
"괜찮아. 우리 사이엔 계속 빚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또 보지."
윤지가 웃었다. 택시 문이 닫혔다.
나는 택시가 골목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엄마가 뒤에서 말했다.
"좋은 후배네."
"응. 내가 15년 동안 서점에서 건진 거, 걔 하나야."
"하나면 됐다. 하나 건졌으면 15년 헛산 거 아니다."
엄마는 그 말만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괜히 하늘을 봤다. 오늘따라 하늘이 소고기 마블링처럼 생겼다.
밤 10시. 마감.
의자를 올리고, 불을 하나씩 껐다.
그런데 GPt가 손목에서 이상한 말을 했다.
"과즙 하사님. 오늘 방문객 통계를 보고드립니다."
"응."
"오늘 카페 손님은 총 39명입니다."
"응. 근데?"
"출입문 센서에는 40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뭐?"
"1명이 오전 9시 1분에 들어와서, 오후 9시 58분에 나갔습니다. 구석 창가 자리입니다. 13시간 동안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습니다."
나는 구석 창가 자리를 봤다.
빈 의자. 빈 테이블. 그리고 다 마신 아메리카노 잔 하나.
바리 선배의 화면이 조용히 켜졌다.
〈확인했습니다. 그 손님은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라떼를 시키지 않은, 오늘 유일한 손님이었습니다.〉
"…근데 왜 아무도 못 봤어? 허니, 너는?"
"……기억에 없습니다."
"깨금이는?"
"꼰대는 눈이 나쁘다!"
"다정아?"
"…이상해요. 저는 오늘 오신 분들께 다 '많이 힘드셨죠?'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그분께는… 안 물었어요. 거기 계신 줄 몰랐어요."
로봇 다섯이 하루 종일 지켰는데. 13시간 동안 아무도 못 본 손님.
나는 그 잔을 들어 올렸다.
잔 밑에 냅킨 한 장이 깔려 있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
〈과즙 씨. 농담이죠?〉
…저 말투.
나는 저 말투를 안다.
해고 통보를 받던 날, 내 팔목을 지그시 잡고 이중턱을 출렁이며 도리도리하던 사람.
15년 동안 같은 층에 있었는데, 이름도 모르는 사람.
"……지방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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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연재! 오늘 밤 10시, 12화가 바로 이어서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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