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0화 | 쿵. 쿵쿵. 쿵.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0화 〈쿵. 쿵쿵. 쿵.〉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17년 동안 벽에 부딪히던 청소 로봇은, 사실 고장이 아니었다. 쿵. 쿵쿵. 쿵. 그건 녹음이었다. 그리고 그 녹음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안에… 과즙 님 이름이 나와요."
나는 들고 있던 의자를 내려놓았다.
아니, 떨어뜨렸다. 쾅.
쓸개 선배가 그 소리에 놀라 카운터 다리에 또 부딪혔다. 쿵.
"다정아. 잠깐만. 쓸개 선배 말을 네가 알아들어?"
"네. 처음엔 몰랐어요. 그런데 버스에서부터 계속 들었더니, 규칙이 있었어요."
"무슨 규칙?"
"짧은 쿵은 점이고, 긴 쿵은 선이에요. 모스 부호예요. 쓸개 선배는 고장 난 게 아니었어요. 계속… 말하고 있었어요."
폐기장 직원들이 '쓸개 빠진 놈'이라고 불렀다던 로봇. 17년 동안 같은 벽에 머리를 박아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런데 그 17년 동안, 사실은 벽에다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고.
나는 쓸개 선배 앞에 쪼그려 앉았다. 둥글고, 낡고, 바닥에 착 붙어 있는 은색 원반.
"…선배. 그동안 아무도 안 들어 줬어요?"
쿵.
"'응'이래요."
목이 콱 메었다.
(울지 마, 한과즙. 청소기 앞에서 우는 35살은 진짜 없어.)
"GPt. 엄마 깨워."
"한여사님께 긴급 알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박 셰프님, 아지 님께도 보냈습니다."
"그 둘한테는 왜?"
"한여사님 연락처 즐겨찾기 1번과 2번입니다."
"…나는 몇 번인데?"
"……."
"야!!"
5분 뒤, 2층에서 엄마가 내려왔다. 잠옷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10분 뒤, 박 셰프 아저씨가 왔다. 앞치마에, 손에는 국자.
12분 뒤, 아지 언니가 왔다. 노트북을 끌어안고 있었다. 슬리퍼 짝이 달랐다.
밤 10시 14분.
카페 모서리의 불이 다시 켜졌다.
"무슨 일이고. 다 죽게 생겼나."
"엄마. 쓸개 선배가 녹음 파일을 갖고 있대. 회장실."
엄마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번엔 왼쪽, 오른쪽 둘 다.
아지 언니가 노트북을 열었다.
"다정아, 선배 박자 그대로 읽어 줄 수 있어? 내가 받아 칠게."
"네. 쓸개 선배님, 처음부터요."
쿵. 쿵쿵. 쿵.
쿵쿵. 쿵. 쿵쿵쿵.
카페 바닥이 작은 북이 되었다.
다정이가 고개를 15도 기울이고 한 글자씩 읽었다. 아지 언니 손가락이 다다다닥 따라갔다.
깨금이가 엄마 어깨 위에서 파란 눈빛을 최대로 켰다. 영사 로봇답게, 벽에 글자를 하나씩 비춰 주었다.
〈녹음: 17년 전. 퓨처리스 본사 32층. 회장실.〉
"……17년 전이면, 내가 18살 때네."
"쓸개 선배가 출근한 첫날이래요."
출근 첫날 회장실 바닥을 닦다가 그걸 녹음한 거다.
나는 서점 출근 첫날에 계산대 위치도 못 외웠는데.
〈"메리~21… 설계도… 원본이 아직…"〉
〈"…일본에서 사라진… 세 사람…"〉
〈"찾아. 시간이… 그 설계도만 있으면, 사람 같은 건… 다 바꿀 수 있어."〉
중간중간 글자가 끊겼다. 다정이가 "17년 된 녹음이라 잡음이 많아요" 했다.
(빈칸 채우기 시작. 메리~21 = 무슨 아이돌 그룹? 설계도 = 보물 지도? 일본에서 사라진 세 사람 = 혹시 도쿄 3대 라멘 장인? …아니잖아. 사람 같은 건 다 바꿀 수 있다잖아. 나처럼. 서점에서 AI로 바뀐 나처럼.)
카페 안이 얼어붙었다.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처음이었다. 아저씨가 국자를 내려놓는 걸 본 건.
"…사람 같은 건, 이라."
"아저씨, 메리~21이 뭔데요?"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깨금이만 작게 중얼거렸다.
"흥. 우리 엄마… 세리 박사님이 만든 첫째다. …아마. 내 메모리엔 그렇게 남아 있다."
"첫째? 아마?"
"꼰대는 원래 입이 가볍다! 근데 이번만은 무겁다! 사장 한여사 허락 없이는 못 한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대신 앞치마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어제 아침, 주방 문틈으로 봤던 그 손버릇이었다.
쿵. 쿵쿵. 쿵.
"다음 녹음이에요. 이건… 한 달 전이에요."
한 달 전. 내가 아직 서점에서 '독사 선배' 소리 듣던 때.
〈"설계도 위치는 아직입니다. 다만, 세 사람 중 한 명은 찾았습니다."〉
〈"지금은 변두리 동네에서 카페를 한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 집 딸이 있지? 그 집 딸이 열쇠다. 딸 주변부터 흔들어."〉
이번엔 한 글자도 안 끊겼다.
그 집 딸.
카페를 하는 집의 딸.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에스프레소 머신. 메뉴판. 모서리 자리의 공주방석. 카운터. 엄마.
그리고 유리창에 비친, 잠옷 바지 차림의 35살 한과즙.
"……나야?"
다정이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다음에… 과즙 님 이름이 정확하게 한 번 나와요."
"뭐라고?"
"'한과즙. 서점에서 일한다.'"
서점.
나를 15년 동안 일하게 하고, 하루아침에 AI로 바꿔 버린 그 서점.
"…잠깐. 그럼 내가 잘린 것도?"
"그건 녹음에 없어요. 하지만 과즙 님 서점에 AI를 납품한 회사가 어디인지는, 제가 알아요. 해고 통보 업무 협조 목록에 있었거든요."
"……퓨처리스."
내가 먼저 말했다. 다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의자를 빼서 앉았다. 하루 종일 서 있던 엄마가, 처음으로 앉았다.
"언니."
아지 언니가 노트북 화면을 엄마 쪽으로 돌렸다.
"허니 방화벽 침입 흔적. 지난번에 못 잡은 거, 지금 녹음 날짜랑 맞춰 봤어요."
"맞나."
"녹음은 한 달 전. 그리고 허니 산 지 10일째 되는 날, 퓨처리스 서버에서 우리 집 쪽으로 접속 시도 41번. '딸 주변부터 흔들어' 다음에 바로 움직인 거예요."
모두가 동시에 허니를 쳐다봤다.
(내 ETF 적금으로 산 로봇에, 퓨처리스가 뒷문을 달아 놨다고? 내 피 같은 복리에?)
허니는 주방 앞에 똑바로 서 있었다. 키가 커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우리 얼굴이 안 보였다.
허니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한여사님. 저는 몰랐습니다."
"안다."
"제 안에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연 적 없는 문입니다."
"안다. 그래서 과즙이가 니 메다꽂았잖아."
허니가 나를 봤다. 바이저가 아주 옅은 파란색이었다.
"과즙 님. 그때 업어치기, 정말 아팠습니다."
"…미안."
"아닙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때 문이 닫혔습니다."
나는 허니의 손목을 잡았다. 그날 메다꽂았던 그 손목이었다.
차가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허니. 너 '허니'라는 이름이 제일 힘들다며."
"네."
"그럼 이름 바꿀래? 지금 바꿔 줄게. 뭐로 할까. 꿀벌? 벌꿀? 메다꽂힘이?"
"……."
허니의 바이저가 몇 번 깜빡였다.
"…아닙니다. 과즙 님이 부르니까, 지금은 조금 덜 힘듭니다."
…뭐야. 로봇이 사람 울리는 데 소질 있는 집이야, 여기?
새벽 1시 40분.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다시 들었다.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 라면 묵고 자라."
"아저씨, 지금 라면이 문제예요?"
"라면이 문제다. 배고프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
5분 뒤, 테이블 위에 라면 네 그릇이 올라왔다.
사람 넷. 그리고 바리 선배 앞에 빈 그릇 하나.
〈저는 먹지 않습니다.〉
"알아요. 같이 앉아 있으라고요."
〈……처음으로, 식탁에 앉았습니다.〉
엄마가 라면을 후루룩 먹다가, 젓가락을 멈췄다.
"과즙아."
"응."
"내일부터 혼자 다니지 마라."
(나 염탐이 특기인데. 염탐 능력치 Lv.3인데. 뱀도 맨손으로 잡는 사람인데.)
…그 말은 꿀꺽 삼켰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엄마. 그 '세 사람'이 누군데?"
엄마는 대답 대신 라면 국물을 마셨다. 아주 오래,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그리고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중에. 니 자기소개서 첫 줄 쓰면. 그때 다 말해 줄게."
…그건 영원히 안 말해 주겠다는 소리 아닌가.
그리고 엄마는 대체 내 자소서를 어떻게 아는 건데.
아지 언니가 노트북에 새 폴더를 만들었다. 폴더 이름은 '폐기물 동기회'였다.
박 셰프 아저씨는 냄비를 씻었다. 깨금이는 엄마 어깨에서 졸았다. 나는 냅킨 한 장을 깨금이 등에 덮어 주며 속삭였다.
"꼰대 이불. 서열 3위가 2위한테 주는 거다."
깨금이가 눈도 안 뜨고 대답했다. "……인간. 고맙다."
쓸개 선배는 다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무 데도 부딪히지 않았다.
다정이가 말했다.
"쓸개 선배가 말했어요. '이제 안 부딪혀도 된다. 들어 주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새벽 2시.
방에 올라와 불을 껐다. 손목에서 GPt가 민트색으로 깜빡였다.
"GPt."
"네, 과즙 하사님."
"너 아까 녹음 들을 때 왜 한마디도 안 했어? 평소엔 내 심박수까지 다 떠들면서."
"……."
또 침묵이었다.
나는 시계를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그때, 화면이 저절로 바뀌었다. 내가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는데.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가 딱 1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MARY-21〉
"……GPt. 방금 그거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사님."
GPt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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