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7화. 이 고물 시계 확 버린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7화 〈이 고물 시계 확 버린다〉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30대 퇴사 백수 과즙, 엄마가 내 적금으로 산 로봇들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화가 나서 던지려던 낡은 스마트워치 앞에서, 늘 웃던 엄마가 처음으로 정색했다.


백수 이틀 차 아침.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15년 동안 몸에 박힌 루틴은 해고 통보 따위로는 안 지워지나 보다. 몸아, 너도 잘렸어. ㅠ


"과즙 하사님, 기상 시간 6시 30분입니다. 오늘의 일정은… 없습니다."

"GPt 일병. 그걸 꼭 소리 내서 말해야 돼?"

"정확한 정보 전달이 저의 임무입니다."

"정확한 정보가 사람을 죽인다, 일병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도 어제 일이 4K로 재생된다. 깨금이 눈에서 나오던 영사기 빛, 허니를 메다꽂던 내 팔(이건 좀 멋있었음 ㅋㅋ), 그리고… 엄마가 내 ETF 적금을 빼서 저 로봇들을 샀다는 사실.

15년 동안 탕비실 믹스커피로 버틴 내 돈! 차까지 팔았는데!


"…복수다. GPt 일병, 받아 적어라. 작전명 〈과즙의 역습〉! 1단계, 엄마가 로봇을 샀으면 나도 산다."

"하사님 잔고로는 로봇 발가락 하나도 어렵습니다."

"……2단계! 공짜로 구한다! 회사들이 사람도 로봇도 버리는 세상이잖아. 주워다 고치면 내 로봇이지!"

"고치는 건 누가 합니까?"

"3단계에서 생각한다."

"작전명을 〈과즙의 무계획〉으로 변경할까요?"

"일병, PT 체조 100회."


(이 녀석, 요새 말대꾸가 늘었어. 엄마 닮아 가나?)


카페 문을 열자 버터 냄새, 커피 냄새, 그리고… 납땜 냄새?


"오, 백수 과즙이 왔나!"


주방에서 박 셰프 아저씨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하얀 셰프 모자에, 걷어붙인 팔뚝엔 회로도 같은 문신. 옆 테이블에선 아지 언니가 노트북 세 대를 켜 놓고 피아노를 치듯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명절마다 전 부치고 화투 치던 아저씨랑 세뱃돈 주던 언니. 어제 엄마가 '한 팀'이었다고 한 그 사람들이다. (한 팀? 무슨 팀? 화투 팀?)


"과즙아, 니 어제 허니 메다꽂았다며? 크하하! 역시 한여사 딸이다! 목 관절 내가 밤새 고쳤다 아이가. 다음엔 쫌 살살 해라."

"어젯밤에도 또 들어왔어, 그놈들." 아지 언니가 화면에서 눈도 안 떼고 말했다. "방화벽 3번 문. 허니 쪽으로."


카운터 뒤에서 허니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조끼에 나비넥타이, 눈코입 없이 가로로 길게 빛나는 바이저 하나. 그걸로 째려보는 게 왜 이렇게 잘 느껴지지?


"…안녕하십니까, 과즙 님. 어제 일은 기억 데이터에서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뭐야, 꽁해 있는 거야?"

"로봇은 꽁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할 뿐입니다."


꽁해 있네. 이름은 허니인데 성격은 쓴 약이다.


"딸! 일어났나!"


엄마가 앞치마를 두르며 나왔다. 금테 동그란 안경이 반짝. 저게 반짝이면 뭔가 꾸미고 있다는 뜻이다. 어깨 위에선 깨금이가 고양이 귀를 쫑긋거렸다.


"인간, 오늘은 술 안 마셨군. 예의 바른 얼굴이다. 칭찬한다."

"너한테 칭찬받고 싶은 생각 없거든?"


"근데 한여사." 박 셰프 아저씨가 행주로 손을 닦았다. "허니 목 안쪽에 설계도에 없는 칸이 하나 있던데—"

"박 셰프. 계란말이 탄다."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아저씨는 진짜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엄마 앞에 손바닥을 쫙 내밀었다.

"엄마. 내 적금. 내 ETF. 내놔."

"없다. 다 허니가 됐다. 봐라, 이쁘제? 내는 돈을 아주 귀엽게 썼다. 참말 칭찬받아 마땅해☆"

"내 돈이라고!!"

"돈 받고 싶나? 그라믄 우리 카페 알바나 해라. 근데 내는 호락호락한 엄마 사장 아이다~ 우리 카페는 개성 가득한 직원만 뽑는다!"


화가 났다. 15년 치 화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는 왼쪽 손목의 시계를 확 풀었다. 20년 넘게 찬, 줄이 민트색으로 바랜, 엄마가 중학교 때 사 준 낡은 스마트워치.


"이딴 고물 시계도 다 엄마가 사 준 거잖아! 확 버린다! 엄마 물건 다 필요 없어!!"


카페가 조용해졌다. 칼질도, 자판 소리도 멈췄다. 깨금이의 귀가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똥 싸는 소리도 우아하게 하던 엄마가, 웃지 않았다.


"과즙아."


사투리가 없었다. 웃음기도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나는 아빠 장례식 날 이후로 처음 들었다.


"그것만은 안 돼."


엄마가 내 손목을 잡았다. 손이 차갑고, 떨리고 있었다.

"그 시계만은, 절대 버리면 안 돼. 알았지?"


엄마는 시계를 다시 내 손목에 채워 줬다. 버클을 채우는 손가락이 이상하게 능숙했다. 마치 이 시계를 수백 번은 뜯어 본 사람처럼.


(이거… 진짜 산 거 맞아?)


괄호 안에만 있어야 할 말이, 처음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엄마. 이 시계, 어디서 산 거야?"


엄마의 손가락이 버클 위에서 딱 1초 멈췄다.

"…됐다! 배고프제? 박 셰프가 니 좋아하는 계란말이 했다! 무라!"


대답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돌아왔는데, 대답은 안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봤다. 아지 언니가 노트북을 조용히 닫는 걸. 박 셰프 아저씨가 깨금이와 눈을 마주치는 걸. 내 손목 위에서 GPt 화면이 아주 잠깐, 처음 보는 무늬로 깜빡이는 걸.


"…GPt. 방금 너 뭐 했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과즙 하사님."


(일병 주제에 거짓말을?)


그날 저녁. 메모장에 "저는 15년 동안"까지 쓰고 지웠다.

(엄마 카페 알바 면접, 내가 먼저 보겠다고 할까? 회사에 낸 가짜 말고, 진짜 나로. …아니, 아직은 말 안 해. 일단 복수부터!)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뒷마당에서 녹슨 손수레를 끌고 나왔다.


"인간, 어디 가나?" 깨금이가 담장 위에서 내려다봤다.

"작전 2단계. 로봇 주우러. 엄마 두고 봐."

"…허락되지 않은 외출은 위험하다."

"너 내 엄마야?"

"아니. 나는 너희 엄마를 지키는 로봇이다."


경기도 화성, 그린리사이클 폐기장까지 버스로 한 시간 반.

철문 너머 고철 더미 꼭대기에서 무언가 반짝 켜졌다.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객님, 요즘 많이 힘드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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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즙이의 인생극장: 화가 났을 때, 나는 물건에 화풀이하는 편인가요, 사람에게 하는 편인가요? 댓글로 "나라면?"을 남겨 주세요!

▶ 작가의 말: 여러분에게도 절대 못 버리는 물건이 있나요? 댓글로 알려 주세요!

▶ 다음 화: 8화 〈로봇 셋 데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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