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8화 | 32층의 AI 사원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8화 〈32층의 AI 사원〉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월요일 9시, 퓨처리스 첫 출근. 보안 게이트가 나를 'AI'로 분류했다. 그리고 32층에서, 내 말투로 말하는 로봇 마흔 대를 만났다.
일요일 밤을 지나, 월요일 아침 7시 52분.
서점 다닐 때 나는 늘 이 시간에 출근했다. 문 열기 8분 전. 책 상자를 뜯기에 딱 좋은 시간.
15년 동안 몸에 밴 시간이, 오늘은 적진으로 가는 시간이 됐다.
"가만있어 봐라."
엄마가 내 머리를 잡고 돌렸다. 까만 머리핀이 귀 위쪽에 꽂혔다. 딸깍.
"빼지 마라. 화장실 가서도 빼지 마라. 머리 감을 때도… 아니, 오늘은 머리 감지 마라."
"엄마, 이거 대체 뭔데."
"묻지 마라 캤다. 세계에서 제일 단단한 거라 캤제? 내가 만든 거 중에 제일 작고 제일 똑똑하다. 니 다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제?"
"방금 나 칭찬한 거야?"
"똥 싸는 소리 하지 마라. 늦겠다. 가라."
엄마가 내 등을 떠밀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나는 모른 척했다.
(엄마, 나 다 봤어. 근데 오늘은 AI 모드라서 감정 표현은 퇴근 후에 할게. 퇴근 후에 실컷 울어 줄게.)
바리 선배 화면에 〈▶ 잔류〉가 떠 있었다.
허니가 문 앞에서 바이저를 노랗게 켰다. 깨금이는 계산대 위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꼰대식 배웅이었다.
그리고 화분 옆에서 목소리가 났다.
"다녀오세요, 과즙 씨. 여기는 제가 보고 있을게요."
…은수 씨는 오늘도 안 보였다.
퓨처리스 본사는 유리로 된 탑이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았고, 유리마다 하늘이 비쳐서 건물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회전문을 지나자 로비에 하얀 로봇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은색 바이저. 정육점의 그놈과 똑같은 얼굴이 스무 개.
스무 개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확히 15도였다.
(다정이 각도다. 다정이가 이걸 어떻게 알았지? 아니, 다정이도 퓨처리스 제품이었지. 그럼 다정이는 이 각도를 배운 거고, 이놈들은 처음부터 이 각도로 태어난 거다. 배운 것과 태어난 것.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르다.)
보안 게이트 앞에 광두가 서 있었다. 대머리가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오늘도 투 라이트였다.
"과즙 씨~ 진짜 왔네! 어서 와, 사원증 찍고 들어와!"
나는 게이트에 사원증을 댔다. 파란 빛이 내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귀 위쪽 머리핀이 아주 살짝, 따끔했다.
〈스캔 중…〉
〈분류: 사무 보조 AI〉
〈등급: 구형〉
삑. 게이트가 열렸다.
"으하하하! 기계가 과즙 씨를 AI로 아네! 역시 과즙 씨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엄마. 머리핀으로 대체 뭘 만든 거야. 그리고 하나만 묻자. 왜 '구형'인데. 신형으로 해 주지. 서른다섯이면 구형이냐? 어? 칭찬받아 마땅하다며!)
나는 표정을 지웠다. 눈썹 1밀리미터 아래로.
"감사합니다. 출근. 완료."
"어? 말투가 왜 그래?"
"업무 모드입니다."
"…오, 좋아! 아주 좋아! 딱 우리 회사 스타일이야!"
손목에서 GPt가 하얗게 깜빡였다.
"하사님."
"쉿. 나 지금 AI야."
"…이 건물. 낯이 익습니다."
"와 봤어?"
"……모르겠습니다."
GPt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만 계속 하얬다.
32층. 'AI 관리팀'.
문패는 거창했는데, 사람 자리는 딱 두 개였다. 광두 자리와 내 자리.
유리벽 너머로 넓은 방이 보였다. 하얀 로봇 마흔 대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각자 앞에 빈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 손님 자리였다.
"과즙 씨 일은 간단해. 저 녀석들 응대 연습하는 거 보고, 이상한 데 있으면 체크만 하면 돼. 감독! 연봉 두 배!"
(사원증. 안 만졌다. 이번엔 진짜다. 연봉 두 배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에 로그가 쏟아졌다. 숫자, 문장, 시간, 오류 표시.
사람 눈으로는 다 못 읽는 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 눈을 껐다.
표정 OFF. 감정 절전 모드. 서점 재고 정리 모드 ON.
한 줄 읽고, 체크. 한 줄 읽고, 체크. 망설이지 않는다. 그냥 돈다.
한 시간 뒤.
광두가 커피를 들고 와서 내 모니터를 봤다. 그리고 커피를 흘렸다.
〈오류 체크: 1,204건〉
"…이, 이거 원래 우리 팀이 일주일 걸리는 양인데?"
"오류. 1,204건. 정리. 완료."
"과즙 씨… 진짜 AI야?"
"아닙니다. 구형입니다."
(15년 동안 이렇게 일했다고 잘렸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일한다고 감탄을 받는다. 같은 일인데. 세상은 참 웃기다. 아니, 세상이 아니라 광두가 웃기다.)
그런데 오후 2시쯤이었다.
유리벽 너머에서 로봇 하나가 빈 의자를 보고 말하는 게 들렸다. 응대 연습이었다.
"고객님, 찾으시는 책은 3층 왼쪽, 두 번째 칸에 있습니다."
손이 멈췄다.
"비 오는 날에는 비닐봉투 한 장 더 드릴까요? 책 모서리가 젖으면 마음도 젖거든요."
…저건 내 말이다.
서점에서 15년 동안, 비 오는 날마다 내가 하던 말. 손님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던 말. 아무도 기억 못 할 줄 알았던 말.
옆 책상 로봇도 말했다.
"고객님, 그 책 오늘 들어왔어요. 제가 제일 먼저 뜯었어요."
그 옆도.
"영수증 필요 없으시면 책갈피로 쓰세요. 그건 공짜예요."
마흔 대가. 내 말투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로그를 끝까지 내렸다. 맨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학습 자료: ○○서점 계산대 녹음 15년치〉
〈주요 화자: 직원 코드 H-0731〉
H-0731. 내 사원 번호였다.
(…아.
AI처럼 일해서 잘린 게 아니었다.
AI가 나처럼 일하려고, 나를 배운 거였다.
15년 동안. 내가 비닐봉투 건네는 동안. 책 모서리 닦는 동안.
그리고 다 배우자, 원본을 반품했다.)
목 안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AI다. AI는 울지 않는다.
나는 숨을 넷에 들이쉬고 넷에 내쉬었다.
(좋아. 울지 말고 계산하자. 내 목소리 마흔 대. 15년치. 저작권료는 누구한테 청구하면 되냐. 광두한테? 대머리 감정가로 쳐도 꽤 나올 거다.)
그리고 이상하게, 화가 정리됐다.
재고 정리하듯이.
(퓨처리스. 너희가 나를 배웠다고? 그럼 하나는 못 배웠겠다. 내가 화났을 때 어떻게 하는지. 그건 녹음 안 됐거든.)
휴대폰이 진동했다. 은수 씨였다.
〈9시 정각에 퓨처리스 트럭 왔어요.〉
〈설치 기사님 두 분, 은색 로봇 하나.〉
사진이 한 장 따라왔다. 카페 문 앞. 엄마가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박 셰프 아저씨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바리 선배 화면이 보였다.
주문하시겠습니까?
▶ 퇴장
▶ 퇴장
▶ 퇴장
〈기사님들이 돌아갔어요. 다음 주에 다시 온대요.〉
〈아, 저는 기사님 바로 옆에 있었는데 아무도 저 못 봤어요.〉
(ㅋㅋㅋㅋㅋ 바리 선배. '퇴장'을 손님이 아니라 남한테 쓴 건 처음이다. 최고다. 오늘부터 선배 서열 올려 줄게. 공동 3위.)
나는 웃음을 삼켰다. 표정 OFF. 하지만 책상 밑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오후 4시.
광두가 내 자리로 왔다. 이번엔 웃지 않았다. 사원증도 만지지 않았다.
"과즙 씨. 위에서 보자셔."
엘리베이터는 32층에서 위로 올라갔다. 버튼에 숫자가 없었다. 문이 열리자 하얀 방이 나왔다. 아무것도 없는 방. 창문 대신 벽 전체가 하늘이었다.
방 가운데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흰 가운. 등을 돌리고.
그 옆에 로봇 몸체 하나가 서 있었다. 허니와 똑같은 몸. 그런데 얼굴 자리가 비어 있었다. 바이저도 없이, 텅.
여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한과즙 씨. 처음 뵙는 것 같죠? 나는 과즙 씨를 아주 오래 봤어요."
(…설마. 신세리? 깨금이의 엄마. 엄마가 숨겨 온 이름이, 저 사람이었다.)
여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봤다.
"……아빠 눈이랑 똑같네."
손목에서 GPt 화면이 꺼졌다.
귀 위쪽 머리핀이, 뜨거워졌다.
━━━━━━━━━━━━
▶ 과즙이의 인생극장: 내가 한 일이 누군가의 '교재'가 됐는데, 정작 나는 빠진 적 있나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댓글로 "나라면?"을 남겨 주세요!
▶ 매일 밤 10시, 다음 화가 올라와요.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