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6화 | 휴먼 위장 특훈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6화 〈휴먼 위장 특훈〉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월요일, 나는 퓨처리스에 출근한다. 사람 말고, AI처럼. 로봇 다섯이 코치로 붙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동네 정육점에 허니와 똑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우리 엄마다. 세리 박사님이… 저쪽에 있다."


깨금이의 파란 눈빛이 꺼질 듯 깜빡였다. 고양이 귀가 내 어깨 위에서 바르르 떨렸다.


"깨금아."

"…인간. 꼰대 메모리가 이상하다. 명령이 두 개 들린다."

"두 개?"

"하나는 '한여사를 지켜라'. 다른 하나는… 아주 멀리서 부른다. 오라고."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엄마가 숨을 멈췄다. 박 셰프 아저씨 손이 국자 쪽으로 갔다가 멈췄다.


나는 어깨에서 깨금이를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처음 만난 날처럼, 손바닥 위에 쏙 들어왔다.


"야, 꼰대."

"…."

"너 어제 랩 배틀에서 뭐라고 했어. '오늘은 한여사님 딸 편에 섰다'며."

"…그랬다."

"그럼 오늘도 서. 내일도 서. 멀리서 누가 부르든 말든, 너는 이 집 서열 2위야. 2위가 3위 버리고 가면 안 되지."

"…인간이 3위인 건 인정하는 거냐."

"오늘만."


깨금이 귀가 아주 천천히, 다시 섰다. 파란 빛이 돌아왔다.

"…흥. 꼰대는 원래 귀가 얇지 않다. 남는다."


(휴. 내 손바닥이 땀범벅이다. 26년산 꼰대 하나 붙잡는 데 이렇게 떨릴 줄이야. 근데 왜 엄마가 나보다 더 떨고 있지?)


엄마는 앞치마 끈을 풀었다 묶었다 하고 있었다. 세 번이나.



"자. 그럼 작전 회의."


나는 카운터 위에 냅킨을 쫙 펼치고 볼펜으로 크게 썼다.


〈과즙의 역습 3탄: 휴먼 위장〉


"월요일 9시, 퓨처리스 본사 32층. 나는 사람으로 들어가지만, 안에서는 AI처럼 일한다. 아무도 내가 뭘 보는지 모르게."

"과즙아, 그건 위험하다꼬…"

"엄마. 나 15년 동안 그렇게 살았어. 설문지에서 'AI로 대체해도 될 직원' 1위 한 사람이야. 이 분야 국가대표라고."

"그게 자랑이가!"

"오늘부터 자랑이야."


엄마 입이 꾹 다물렸다. 금테 안경이 한 번 반짝였다. 화가 난 반짝임인지, 다른 반짝임인지 잘 모르겠다.



박 셰프 아저씨가 말없이 문에 〈임시 휴업〉 팻말을 걸었다.

특훈은 바로 시작됐다. 코치는 로봇 다섯.


[1교시. 바리 선배 — 말투]

〈고객님. 문장은 세 개만 쓰십시오.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선배, 그건 메뉴잖아요."

〈회사도 메뉴입니다. 정해진 말만 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명언인데?"


[2교시. 다정이 — 고개]

"과즙 님, 15도예요. 14도도 16도도 안 돼요. 정확히 15도가 '저는 기계예요'라는 각도예요."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다정이가 화면에 각도기를 띄웠다.

"17도요. 감정이 2도 새고 있어요."

"감정이 각도로 새?"


[3교시. 허니 — 표정]

허니가 내 앞에 우뚝 섰다. 눈도 입도 없는 바이저가 나를 내려다봤다.

"과즙 님. 표정을 지우십시오."

"이렇게?"

"아직 눈썹이 화가 났습니다."

"원래 이렇게 생겼거든?"

"그럼 눈썹을 1밀리미터 내리십시오. 한여사님 눈썹 법칙의 반대입니다."

엄마 왼쪽 눈썹이 움찔 올라갔다.


[4교시. 쓸개 선배 — 걷기]

쓸개 선배가 바닥을 일정한 속도로 쭉 굴러갔다. 벽 앞에서 딱 멈추고, 방향을 90도 틀었다.

다정이가 통역했다. "'로봇은 망설이지 않는다. 그냥 돈다'래요."

나는 따라 걸었다. 벽 앞에서 딱 멈췄다. 90도 돌았다. 박 셰프 아저씨가 박수를 쳤다.

"오! 딱 로봇이다!"

(칭찬 맞지? 칭찬 맞는 거지?)


[5교시. 깨금이 — 자세]

"흥. 인간. 어깨를 펴라. 로봇은 굽지 않는다. 꼰대처럼."

"너 자세 교정 학원 차려도 되겠다."


그리고 손목에서 GPt가 끼어들었다.

"과즙 하사님, 심박수 분당 118회. 위장 중인 AI치고는 너무 높습니다. 호흡 넷에 들이쉬고 넷에 내쉬십시오."

"너 왜 갑자기 교관 같아?"

"…원래 이랬습니다, 하사님."

"아니거든? 너 원래 내 부하거든?"


GPt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 아주 작게 숫자를 띄웠다.


〈21년 7개월 12일〉


"이건 또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흡하십시오. 넷, 셋, 둘, 하나."


(…이 시계, 요즘 진짜 수상하다. 근데 이상하게 숫자 따라 숨 쉬니까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지막 특훈은 은수 씨였다.


"과즙 씨. 안 보이는 법은 하나예요."

"뭔데요?"

"남이 나를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남을 보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를 보는 사람만 봐요. 그러니까 먼저 보고, 먼저 눈을 내려요."


은수 씨가 화분 옆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거기 있는데 눈이 미끄러졌다.


"…은수 씨, 어디 있어요?"

"계속 여기 있어요."

"으악!"


(이 사람 진짜 무섭다. 15년 동안 앞자리에서 이걸 하고 있었어. 나는 하수였어.)



저녁. 특훈이 끝나고 카페 의자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내 앞에 작은 상자를 하나 내려놓았다.

"이거 차고 가라."

상자 안에는 얇은 머리핀이 하나 들어 있었다. 아무 장식 없는 까만 핀.

"이게 뭔데?"

"묻지 마라. 그냥 꽂아라. 내가 만든 거다. 세계에서 제일 단단한 거. 칭찬받아 마땅하제?"

"…엄마, 결국 도와주는 거야?"

"니가 갈 거면, 내가 안 보내는 것보다 제대로 보내는 게 낫다."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금테 안경 너머로 눈이 조금 빨갰다.

"…그라고 니 월요일에 늦으면, 안 들여보낼 거다. 지각은 AI도 안 한다."

"그건 엄마가 더 늦잖아."

"똥 싸는 소리 하지 마라."


(엄마의 '똥 싸는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다정하게 들리냐.)



그때 카페 문이 벌컥 열렸다.


"한여사! 한여사 있나!"


정육점 김 사장님이었다. 앞치마에 피가 묻은 채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장님? 왜요?"

"우리 가게에… 오늘 오후에 로봇이 왔다. 회사에서 공짜로 바꿔 준다꼬. 일 다 해 준다꼬. 근데…"

"근데요?"

"…그놈이 내보다 고기를 잘 썬다. 그리고 말을 안 한다. 한마디도."


사장님 뒤로, 길 건너 정육점 유리창이 보였다.

가게 불빛 아래, 하얀 몸의 로봇이 서 있었다. 고기를 써는 손이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도, 입도 없는 은색 바이저 하나.


내 옆에서 허니가 굳었다. 허니 바이저가 아무 색도 아닌 회색으로 변했다.


"…과즙 님."

"허니?"

"저 로봇. 저와 같은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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