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5화 | 광투, 다시 만났다 (무료 웹소설)

AI한테 해고된 딸 한과즙과 쿨한 엄마, 수상한 로봇들이 함께 사는 블랙 코미디 무료 웹소설 「나는 한과즙이고, 로봇의 주인이 될 거야」 15화 〈광투, 다시 만났다〉입니다. 직장인 공감, AI 해고, 반려로봇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1화부터 무료로 읽어 보세요.

이번 화 미리보기
내 해고의 주범이 제 발로 카페에 왔다. 퓨처리스에 취직하라고. 나는 대답했다. "좋아요, 갈게요." 그 말 한마디에, 엄마가 21년 동안 숨겨 온 이름을 꺼냈다.


"과즙 씨~ 오랜만이야. 내가 그랬지? 백수 되면, 나한테 취업 시집오라고."


유리문 너머에서 대머리가 반짝였다. 눈알도 반짝였다.

대머리도 빛나고 눈알도 빛나서 'two light', 광투. 서점 사람들이 지어 준 별명은 오늘도 정확했다.


허니가 내 앞을 팔로 막았다. 바이저가 빨갰다.

"과즙 님. 나가시면 안 됩니다."

"허니, 비켜."

"위험 인물입니다. 퓨처리스 사원증을 확인했습니다."

"알아. 그래서 나가는 거야."


(내 해고의 주범이 제 발로 걸어왔다. 택배도 아니고 직접 배송. 이런 걸 두고 굴러온 복이라고 하지. 작전명 〈과즙의 역습 2탄: 대머리 공략〉, 지금 개시!)


깨금이가 카운터에서 폴짝 뛰어 내 어깨에 앉았다. 고양이 귀가 바짝 섰다.

"흥. 인간이 나가면 꼰대도 나간다. 서열 2위의 의무다."

"너 어제부터 2위 고집하더라."

"합격한 인간의 어깨는 2위 자리다."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오세요, 카페 모서리입니다~☆"


광두가 움찔했다. 내가 웃으면서 맞을 줄은 몰랐겠지. 회식 날 멱살 잡힌 기억이 아직 목에 남아 있을 테니까.



"아이고, 손님 오셨네!"


주방에서 엄마가 나왔다. 앞치마에 금테 안경. 안경이 한 번 반짝였다.

"모난 손님일수록 귀빈이다. 저 모서리 자리 앉으이소. 공주방석에."


광두가 공주방석에 앉았다. 분홍 레이스가 대머리랑 정말 안 어울렸다.

(엄마, 지금 일부러 저기 앉힌 거지? 정육점 김 사장님이 울고 간 그 자리. 오늘은 저 대머리가 울고 갈 차례다.)


"라떼 하나요."

바리 선배 화면이 켜졌다.


주문하시겠습니까?

▶ 아메리카노

▶ 아메리카노

▶ 퇴장


"…퇴장은 뭐야?"

〈메뉴에 없는 걸 시키시는 손님용입니다.〉

"라떼가 메뉴판에 있잖아!"

〈저 메뉴판은 제 메뉴판이 아닙니다.〉


광두가 헛기침을 하고 명함을 내밀었다.


〈FUTURELESS 인재영입팀 팀장 광○○〉


"과즙 씨. 서점은 미안하게 됐어. 근데 사람이 잘리면 더 좋은 데 가는 거야. 우리 회사, AI 관리직 자리가 있어. 연봉 두 배. 로봇들 일하는 거 감독만 하면 돼."

"제가요? AI처럼 일한다고 잘린 제가, AI를 감독해요?"

"그러니까! 과즙 씨만큼 AI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딨어~ 하하하!"


광두가 웃으면서 사원증을 두 번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걸 봤다.

15년 동안 서점 계산대에서 봤다. 광두는 거짓말할 때 사원증을 만진다. 두 번 만지면 큰 거짓말이다. 그리고 눈알을 오른쪽 위로 굴린다. 지금처럼.


(거짓말 확정. 재고 정리하듯 정리해 보자. ① 연봉 두 배 — 거짓말. ② 감독만 하면 됨 — 거짓말. ③ 과즙 씨만큼 AI를 잘 아는 사람 — 이건 진심인데 칭찬이 아니라 목적이다. 왜 나지?)


"근데 팀장님."

"응?"

"저 잘린 거, 설문지 때문이잖아요. 'AI로 대체해도 될 직원' 1위."

"아, 그거? 그건 동료들이 뽑은 거라~ 나도 마음이 아팠지~"


사원증. 두 번.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젯밤 은수 씨가 복사해 준 설문지 원본이었다.


"제 이름에 마흔일곱 표. 그런데 우리 층은 서른한 명이에요."

"……."

"마흔일곱 표 중에 마흔네 표가 같은 볼펜, 같은 필체. 같은 날 오후 3시 12분."

"그, 그걸 어떻게…"


"……저 그 시간에 복사기 앞에 있었어요."


화분과 벽 사이에서 목소리가 났다.

광두가 "으악!" 하고 공주방석에서 튀어 올랐다. 은수 씨가 이중턱을 출렁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15년 동안 앞자리였던 노은수입니다."

"누, 누구?"

"…역시 모르시는군요."


(은수 씨 존멋. 은둔술 최고 경지. 저건 거의 닌자다. 나보다 한 수 위야.)


다정이가 입구에서 천천히 다가와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고객님. 요즘 많이 힘드셨죠? 거짓말을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쓰시려면요."

"뭐, 뭐야 이 로봇은!"

"그리고 방금 하신 말씀, 전부 저장했어요. 해고 통보 로봇은 녹음이 기본이거든요."


쓸개 선배가 광두 구두에 쿵 부딪혔다. 쿵. 쿵쿵. 쿵.

"'반짝이는 건 대머리만이 아니다'래요."

"그건 무슨 뜻이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쓸개 선배는 가끔 시를 써요."


광두 대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반짝임이 두 배가 됐다. 이제 진짜 'two light'였다.


(봤냐, 광투. 서점에서 15년 동안 책만 정리한 줄 알았지? 나는 사람도 정리했다. 너는 맨 아래 칸, 반품 박스 옆.)



광두가 겨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처음으로 웃지 않고 말했다.


"…과즙 씨. 설문지가 뭐가 중요해. 어차피 과즙 씨는 우리 회사 오게 돼 있어."

"왜요?"

"우리 팀장님이… 아니, 위에서 과즙 씨를 아주 궁금해하시거든."


사원증을 안 만졌다.

진짜였다.


광두는 명함을 테이블에 두고 일어났다.

"생각해 봐. 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 순간, 나는 명함을 집어 들었다.


"좋아요. 갈게요."


카페가 얼어붙었다.


광두가 입을 벌렸다. 허니 바이저가 하얘졌다. 깨금이 귀가 납작해졌다. 바리 선배 화면에 '▶ ???'가 세 개 떴다.

주방에서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떨어뜨렸다. 땡그랑.


"지, 진짜? 과즙 씨 진짜로?"

"네. 연봉 두 배라면서요. 거짓말이면 고소하고요."

"하, 하하! 역시 과즙 씨! 월요일 9시, 본사 32층! 내가 마중 나갈게!"


광두는 신이 나서 나갔다. 검은 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니 미쳤나!!!"


엄마 목소리가 카페를 흔들었다. 엄마가 소리 지르는 걸 나는 처음 봤다. 금테 안경이 콧등에서 미끄러졌다.


"거가 어딘 줄 알고 간다꼬! 퓨처리스다! 니 자른 데다! 니 노리는 데다!"

"알아."

"알면서 와!"

"엄마가 말을 안 해 주니까."


엄마 입이 멈췄다.


"모레 아침에 다 말해 준다며. 못 기다려. 내 회사, 내 적금, 내 인생이잖아. 엄마가 말 안 해 주면, 내가 직접 32층 올라가서 알아낼 거야."

"……."

"걱정 마. AI처럼 일하는 거, 그거 내 특기야. 15년 했어. 거기 가면 아무도 나 사람인 줄 모를걸?"


(이건 진짜 자신 있다. 표정 OFF, 말투 기계 모드, 감정 절전 모드. 서점에서 갈고닦은 AI 연기, 이번엔 무기로 쓴다.)


엄마가 한참 나를 봤다.

그리고 의자를 빼서 앉았다. 금테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닦고, 또 닦았다.


"…박 셰프. 아지 불러라."

"벌써 왔어요, 언니."

아지 언니가 뒷문에 서 있었다. 노트북을 끌어안고. 슬리퍼는 오늘도 짝짝이였다.



엄마가 안경을 다시 썼다.


"과즙아. 내 이름이 뭐고."

"…한서린. 한여사."

"맞다. 그 한서린이 옛날에 뭐 했는지 아나."

"라떼 박사?"

"똥 싸는 소리 하지 마라."


엄마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똑, 딱, 똑. 벽시계 초침 같은 박자였다.


"내는 자물쇠 만드는 사람이었다. 문 잠그는 자물쇠 말고. 컴퓨터 안에 거는 자물쇠. 보안 코드."

"……."

"세계에서 제일 단단한 자물쇠. 아무도 못 연 거. 그거 만든 사람이 니 앞에 앉아 있다. 이 정도면 칭찬받아 마땅하제?"


(엄마. 지금 정체 고백하면서도 자화자찬이 빠지질 않네. 근데 이상하다. 허세로 안 들린다. 처음으로.)


"박 셰프는 내 손이었다. 기계 만지는 거, 설계하는 거. 저 팔뚝 문신, 그거 회로도다."

박 셰프 아저씨가 쑥스럽게 팔을 긁었다. "…진짜 회로도 맞다."

"아지는 내 눈이었다. 누가 들어오는지, 어디서 들어오는지. 다 본다."

아지 언니가 노트북을 톡 쳤다. "방화벽 3번 문, 그거 다 우리가 지킨 거야."


"그래서 우리 셋이, 한 팀이었다."


"……화투 팀?"

"화투 팀 아이다!!"


박 셰프 아저씨, 아지 언니, 엄마가 동시에 외쳤다. 7화 때부터 묵혀 온 한이 느껴졌다.


(아니 그럼 명절마다 화투는 왜 친 건데? 위장이었어? 엄마가 나한테 3만 원 딴 것도 위장이었냐고!)



"그럼 녹음에 나온 거. MARY-21은 뭔데."


엄마가 잠깐 눈을 감았다.


"AI의 기억 보관소다."

"기억 보관소?"

"AI가 배운 거, 본 거, 기억한 거. 그걸 전부 품고 있는 거. 그 안에 든 걸 손에 넣으면, 녹음에서 들었제? 사람 같은 건 다 바꿀 수 있다."

"퓨처리스가 17년 동안 찾는 게 그거야?"

"그래."

"그게 지금 어디 있는데?"


엄마가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눈이 아주 잠깐, 내 손목 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손목에서 GPt 화면이 깜빡였다. 민트색이 아니라, 처음 보는 하얀색으로.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시계를 덮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아직이다."

"엄마!"

"아직이라 캤다."


엄마 목소리가 낮아졌다. 7화 때 그 목소리였다. "그것만은 안 돼" 하던.



"그럼 이거 하나만 말해 줘."

나는 광두 명함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광두가 '위에서 나를 궁금해한다'고 했어. 그 위가 누구야?"


엄마가 명함을 오래 봤다. 박 셰프 아저씨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아지 언니가 노트북을 닫았다.


"퓨처리스에 핵심 기술자가 한 명 있다. 휴먼 로봇은 다 그 사람 손에서 나왔다."

"이름이 뭔데."


엄마가 숨을 한 번 쉬었다.


"……신세리."


그때였다.

내 어깨 위에서 깨금이가 굳었다. 파란 눈빛이 꺼질 듯 깜빡였다. 고양이 귀가 천천히, 천천히 눕혀졌다.


"…인간."

"깨금아?"


"…우리 엄마다. 세리 박사님이… 저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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